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제국(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문단 편집) == 범아시아 조약기구 == [[파일:qjadktldkwhgkqrlrn1876.png]] 대한제국의 주도로 대한제국·청·일본·몽골·대만·유구까지 포함한 국가들의 협력기구. 본래 대만, 유구는 다른 열강의 영역이라 가입하지 않을 예정이었으나 대만은 영국이 가입시켰고, 유구는 정식 가입국은 아니어도 대한제국과 일본의 보호령이라 사실상 그 일부에 가깝다. 영국에서는 프로이센이 관세동맹으로 그랬듯이 아시아 세력을 모아 영국에 대항할 세력을 만들지 않을까 경계하였으며, 이 때문에 대만을 가입시켰다. 아시아, 특히 대한제국 백성들은 그냥 천조체제의 근대적 형식의 변주로 여기고 있다. 희한하게도 미국은 범아시아 조약기구를 '''[[먼로 독트린|칭기즈칸 독트린]]'''이라고 명명하는데 이형이 스스로를 대초원과 몽골, 만주의 [[카간]]이라고 자칭하기 때문인 듯하다. 창설 목적은 아시아의 발전과 공생을 위한 경제협력과 공동방위. 타 국가의 시선으로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군사연합이지만, 대한제국·청·몽골이야 어쨌든 일본, 유구, 대만은 굳이 러시아와 전면전을 벌일 원한도 이유도 없고, 국경을 맞대는 삼국도 될 수 있으면 러시아와의 확전은 피하려 하기에 공동방위는 강제되지 않는다. 일단 [[한미연합군사령부|아시아 연합군 최고사령부]]와 [[세계무역기구|무역관리기관]] 같은 산하 기구들이 한성에 설치되는 등 대놓고 대한제국이 주도하지만 공동사령부에 각국 장교들이 참여하고 일부 산하 기구들이 가맹국에 설치되는[* 대표적으로 일본에 극동보건기구가 설치되었다.] 바 그냥 뺏기는 것 같지는 않으므로 좀 찜찜해하는 정도로 그럭저럭 받아들여졌다. [[제1차 세계 대전(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이루어진 가맹국 정상들 간의 2차 회동에서는 단오 축제 개최권의 가맹국 내 경합, 가맹국의 육/해군 연합훈련을 추진하는 등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 양면에서 대한제국 중심의 아시아 패권 질서 형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김가진의 아시아주의, 주인공의 민족자결주의 그리고 전창혁의 일주일제가 발표되면서 이러한 질서 형성에 필요한 사상적 기반도 마련되었다. 이 방식은 표면적으로나마 가맹국의 자치권을 완전히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19세기식 식민통치와는 전혀 다르다. 미래인인 이형이 [[식민주의/영향#s-2.2|제국주의적 식민지 통치방식이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고 폐해는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식민지 개척 및 유지를 위한 막대한 군사비, 식민 정부 운용을 위한 경제적, 행정적 비용을 지출할 역량도, 이유도 없으니 100년 후에나 등장할 여러 국제기구를 참고해서 각국의 정치적, 경제적 보호장벽을 극한까지 없애버리고, 그렇게 드러난 맨살에 빨대를 꽂아 내용물만 빨아먹자는 것이다. 21세기에는 경우에 따라 이런 방식으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얼마나 종속될 수 있는지 누구나 알지만, 19세기 사람들이 보기엔 익숙치 않은 방식이라 각 가맹국들은 등에 빨대가 꽂힌 줄도 모르거나 꽂힌 줄은 알아도 '이 정도면 참을 만하지.' 하며 빨대의 크기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형은 이런 조약기구의 본 목적이 드러나려면 최소 10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고, 그때쯤이면 이미 상당한 종속화가 이뤄졌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즉 당시 국가 상황과 세계 정세, 그리고 미래 제국주의의 몰락을 알고 있는 이형이 대한제국 주도의 패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만든, 가장 핵심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열강들의 식민지 통치방식과 비교하면 실제로도 매우 온화하다. 비록 정치, 외교, 군사 등 다방면에서 대한제국의 강한 입김이 미칠 것이고 문화적으로도 강력한 동화정책이 실시되긴 하겠으나, 자체적인 정부도 있고 그 자치권도 상당히 보장되기 때문에 19세기~20세기 초반에 실제로 발생했던 각종 탄압 및 착취는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단적으로 말해 팔다리 자르고 장기 털어가서 크게 한탕하는 대신, 어쨌든 먹여살려주고 건강관리도 어느 정도 해주는 대신 꾸준히 피를 빨아먹겠다는 것이다. 당장 사지 절단을 면한 입장에서는 온화하게 보일 수밖에.[* 그래서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반농담 반진심으로 대한제국 만세를 외친 거다. 물론 진작부터 식민지화는 관심도 없던 이형은 자기 나라 피를 뽑아가겠다는데 만세를 부르는 요시노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300화 전후로 이런 면이 매우 부각되어, 아시아 식량농업기구는 각국의 식량 생산에 있어 필요한 각종 정책 조율과 무역을 관장하며 아시아 경제를 블록화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고,[* 식량농업기구를 통하여 각국은 농작물을 기르는 노하우나 지식을 주고받으며 어업과 목축업 등 거래도 활발하며 사실상 일차사업을 모두 주관하고 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사상이 뿌리 깊은 아시아권에서 이런 대규모 협력은 사실상 하나의 공동경제체로 활성화되게 만들어주고 있으며, 서로 협력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하게 만들고 있다. 일차산업이 대다수인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사실상 경제 외교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 더욱이 농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현대 농업은 생물학, 화학과 같은 각종 기초과학 뿐 아니라 도로, 철도, 댐 등 각종 토목 공학, 고도의 경영학 등이 적용되어야 가능한 복합 산업이다. 아시아 식량농업기구는 이러한 영역을 모두 주도적으로 진행할 권한이 있고 아시아 각지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거의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등 매우 강력한 기관으로 묘사된다. 사실상 아시아 공동 경제개발 (및 대한제국의 종주화)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인 셈.] 이는 종주국인 대한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경제적 발전을 이끌고 있다. 단순히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서로 주고받으며 상호 발전을 꾀하되 항상 그 정점에 서는, 전에 없던 새로운 국제 질서를 본 서양의 여러 반제국주의 지식인들이 깊은 인상을 받을 정도이다. 특히나 식량농업기구는 아주 전체에 질소비료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신농유업 사업을 전담하게 되면서 아주 전체에서 말 그대로 초국가적인 권위와 추진력을 보여줬는데 이를 통해 일어난 일본의 문제를[* 아직 영주에 준하는 권한을 가진 각 번주들이 식농기구의 개입을 달가워하지 않아 끈질기게 방해하고 사보타주를 가했다. 이에 수십년간 혼슈의 에도 정부가 홋카이도를 차별하자 원한과 야심이 쌓인 마쓰마에 번은 독자적으로 식농기구의 개입을 환영하면서 에도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의사를 보인다.] 황제 이형이 일부러 식농기구와 의견이 불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아주기구의 초법적인 힘과 공정성을 보여줬다.[* 당연히 한국 정부가 미리 짜고 친 일이었다. 심지어 일본 정부의 모순적 태도를 비난한 식농기구 부총재는 일본인이었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